- 프로젝트의 성공기 -
설악산 종주
올해 초부터 계획했던 설악산 종주.
그러나 시작부터 여러 가지 외부의 요인들로 인하여 성공하지 못해 잠시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가을이 오자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번 가을을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고 9월이 되자마자 예전에 준비했던 자료를 가지고 코스나 준비물 들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그러나 별다른 변동 사항 없이 예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고 날짜를 잡았다.
D-Day는 9월 29일 일요일.
한토산의 정기산행과 겹치지 않게 월요일을 휴가 내서 일요일~월요일 1박2일 종주 계획이었다.
올해 초 국립공원관리공단 대피소 예약 시스템에 좌절한 뼈저린 경험을 통해 이번에 예약 시스템을 분석해보니 약간의 빈틈이 보였다.
빈틈 공략을 위한 방법들을 미리 숙지해놓고 기다렸다. 예상한대로 아침 10시 예약시작 시각에는 실패!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미리 준비해둔 빈틈 공략으로 4명 자리를 예약 성공했다.
이제 드디어 설악산에 가는가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놓고 이제 같이 갈 사람 섭외에 나섰다.
예전부터 같이 가고 싶어했던 회사 동료들은 가고는 싶으나 상황이 안되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주위에 가고 싶어할 만한 사람에게 연락을 해보니 마땅치 않았다. 혼자 가야 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역시 한토산 회원들이었다.
예전부터 내가 설악산에 가고 싶어하는걸 아신 바람아님은 무조건 갈 수 있다 하셨고
저녁놀님도 별일 없으면 같이 갈 수 있다 하셨다.
일단 나포함 3명이면 충분한 인원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4명을 모아 가면 여러모로 좋을것 같아 한 명을 더 물색하기로 했다.
산행거리나 일정의 빡빡함도 고려해야 했기에 나머지 한 명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아이리스님이 관심을 보이셨고 이내 같이 가자고 확정을 지어주셨다.
이로써 4명의 참여인원이 정해졌고 출발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에 지도를 몇 부 프린터 하고 준비물 배분, 코스 분석해서 일정을 계획하고 그리고 예상 소요 비용과
여러 가지 사전 준비해야 할 것들을 미리 손 써뒀다. 이제는 그날이 오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나 출발 3일전 일기예보는 우리의 마음을 뭉게 버렸다.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 것이라는 예보였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혹여 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 보았으나
출발 전날까지 예보는 변하지 않았고 결단을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대부분 의견이 힘들게 한번 가는데 굳이 우천 산행으로 시야도 좋지 않은 날 가지 말고
연기하자는 의견이어서 어쩔수없이 출발 일을 연기하기로 했다.
대피소 예약 때문에 한번 연기하면 최소 15일을 미뤄야 한다.
하루 하루 고통스런 날이 더디게 지나갔고 달이 바뀌어 10월이 되었다.
그러던 중 한토산에서 10월 12일 토요일 설악산 12선녀탕 코스 산행 정보가 떴다.
머리가 복잡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제대로 종주를 해 볼것인가? 아니면 한토산 정기산행을 가서 맛보기를 할 것인가?
예전에 ‘설악산 가기 프로젝트’ 글을 썼을 때 우리 회원 중 몇 분이 산악회 따라서 한번 가보고
그걸 바탕으로 나중에 개인적으로 가보라는 조언이 생각났다.
정기산행이 토요일 이지만 산행지가 설악산으로 멀기에 정기산행과 개별산행을 다음날 이어서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나도 그럴진데 다른 분들에게도 연속으로 설악산 산행을 하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정을 하지 못한 채 고민에 휩싸인 채 그나마 나중에 어찌 될지 몰라 일단 10월 13,14일로 연기하고
다시 한번 대피소 예약 전쟁을 치룰 준비를 했다.
날짜가 점점 단풍시즌이 되어 가면서 예약시스템 홈페이지가 전보다 더욱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예약 당일 10시 땡!
역시나 또 실패!
점점 상황상 한토의 12선녀탕 코스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며칠후 어머니로부터 무거운 전화를 받았다.
형수가 서울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한다는 것이다.
한토에서 12선녀탕 가는 토요일에 어쩔 수없이 식구들과 서울에 병문안 가야 하게 되었다.
12선녀탕도 못 가고 종주도 못할 상황이 되어갔다.
그 다음주부터는 다른 일정이 이미 선약되어 있어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날짜도 없었다.
올해 설악산 가기는 이렇게 물 건너 가는구나 망연자실 했다.
그렇게 허탈감에 빠져있는데 동행하기로 한 분들이 나를 위해 상황이 어찌되어도 같이 가겠노라 하셨다.
다들 휴가를 바꾸시기로 하였고 예약만 성공하면 같이 갈 수 있을 거라 하셨다.
이런 고마우신 분들 같으니라고.
다시 힘을 내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단풍 시즌으로 접어들기 시작한 설악산 대피소 예약은
이제 그마저 있던 빈틈도 없을 정도로 예약대기도 올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리를 예약 해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리 저리 시간을 쪼개고 신경 쓴 빈틈 공략으로 어렵사리 4자리 예약을 성공하고
기쁜 마음에 나머지 참여자에게 예약성공 문자를 보냈다.
또 날씨가 우리 발을 묶을까 봐 출발 당일에 가까워지면서 날씨 정보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이번엔 날씨로 인한 연기는 없었다.
그러던 중 이번엔 참여자에 변수가 생겼다. 저녁놀님이 형수님과 같이 따로 오시기로 해서 한 명을 더 확보해야 했다.
주변에서 어찌 아셨는지 솔잎님이 설악산 종주를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고 하셔서 이번에 같이 가시기로 하였다.
그렇게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출발 전날이 되었다.
서둘러 서울로 병문안을 다녀온 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미리 계획해 둔 장을 봤다.
대피소에서 파는 물품들은 거기서 사기로 하고 팔지 않는 것만 사가기로 했고 가서 간편히 먹을 수 있게 고심 끝에 정한 메뉴들이다.
소주를 한 개 더 집어넣을까 말까를 가지고 한참을 망설였다.
집에 돌아와서 배낭을 꾸리고 알람을 맞추고 있는데 설악산 12선녀탕 정기산행에 참여하신 저녁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설악산에 단풍이 거의 없다는 마음 아픈 연락이었다.
어짜피 난 산을 보러 가는 거지 단풍은 옵션일 뿐이라고 위안하며
그보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그 동안의 경험에 산행 전날 잠을 설치는 걸 막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한 잠 잘오게 도와주는 멜라토닌을 하나 먹고 조금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어있던 나는 알람을 껐다
약효보다 나의 기대와 설레임이 더 쎘는지 잠을 푹 자지 못하였지만
서둘러 씻고 채비하고 운전대를 잡고 바람아님, 솔잎님, 아이리스님을 픽업하고 설악산으로 출발하였다.
첫번째 들린 휴게소에서 보니 온통 산에 단풍놀이 가는 버스들과 사람들로 붐볐다.
저많은 사람들이 전부 설악산에 가서 등산로에 개미들처럼 줄을 지어 가는건 아닌가 걱정이 됬다.
긴 거리를 바삐 달려왔지만 설악산 근처에 오니 차가 밀려 예상보다 30분 정도 늦게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었다고 차량탁송기사로부터 한소리를 듣고
아이리스님이 손수 싸 온 점심에다 휴게소에서 파는 국밥 한 그릇을 시켜 겨우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폈다.
먹는 도중 탁송기사가 짜증을 내며 도착해서 먹는둥 마는둥 정리하고 짐을 차에 넣고 차량을 넘기고
다시 자리로 와서 남은 것들을 마저 먹고 한계령휴게소 출발샷을 찍었다.
맑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 지더니 금새라도 비가 올 듯 하였다.
우비를 살까 망설이는 솔잎님. 괜찬을거 같다는 바람아님의 말씀에 그냥 오르기로 결정하고
드디어 산행 시작.
예정된 6시까지는 중청대피소에 도착을 해야 해서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한계령 코스는 처음부터 가파른 계단이었다. 바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보통 당일 산행의 배낭보다 더 많은 짐과 물품들로 배낭도 무거웠다.
그러나 마음만은 이미 설악산에 와 있다는 걸 인지 하는것 만으로도 가벼웠다.
그렇게도 오기 힘들었던, 그렇게 많은 준비와 기다린 시간들이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으로 보답 받는 순간이었다.
그 작은 휴게소까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막상 산을 오르는데 이상하게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몇 명 없었다.
좀더 올라가다 알게 되었지만 오늘이 일요일이고 시간대가 오후라 지금 오르는 사람은 대피소 예약자뿐이란걸 알았다.
그러다 보니 내려오는 사람은 있지만 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아까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한참을 이리 저리 오르고 나서 겨우 서북능선에 도달하자 드디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사진으로만 봤던 설악산의 장관들이 내 눈에 투영되었다.
입은 그저 와~와! 감탄사 밖에 나오지 않았고 몸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힘든 줄 몰랐다.
하나라도 더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바삐 여기 저기 조망을 찍었고
우리는 서로 행복해하며 사진을 찍어주고 그렇게 설악산에 빠져들고 있었다.
다행히 출발할 때의 어두운 구름은 걷히고 맑게 개어 시야가 멀리까지 보였다.
서북능선을 한참을 가다 보니 이제 더 이상 내려오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리고 오르는 사람도 우리 외에 한 팀이 전부다.
설악산 서북능선을 우리가 전세 낸 것처럼 조용한 가운데 웅장함을 만끽하는 엄청난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가는 내내 계속해서 다람쥐가 나타나 아이리스님을 놀래 키고 우리는 아이리스님의 비명에 놀라고
그렇게 이런 저런 즐거운 산행을 계속했다.
가장 멀리에 울산바위까지 보이고 가까이는 귀때기청봉 또 이름 모르는 여러 봉과 능선들!
그렇게 설악의 한쪽 면이 다 보였다.
뾰족뾰족 기암괴석으로 꽉 차있는 설악산!
지금까지 가본 산에 비할 산이 정말 아니었다.
이래서 다들 설악산에 와본 사람과 못 와본 사람을 나눈다고 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중청 대피소 가기전 마지막 끝청 봉우리쯤 못미쳐 시간대가 일몰이 될 듯했다.
멋진 일몰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에 나와 바람아님은 달려서 끝청 봉우리에 도착했다.
입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손은 바삐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일몰이 지나고 더 늦기 전에 중청대피소를 향해 발을 옮겼다. 봉우리를 넘자 중청대피소가 보이고
저멀리 대청봉도 보였다.
그렇게 우린 설악산 종주 첫날 도착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우리도 쉴 사이 없이 모포를 받고 자리를 배정받고 물품들을 구매하고 밖에 겨우 자리를 마련해서 조촐한 저녁상을 차렸다.
훈제 오리고기를 쌈에 싸서 소주 한잔씩을 하는데 그 맛을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캬~
옆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대학생들과 농담을 섞으며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설악산에 있음을 모두 즐거워했다.
이순간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나의 동행인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것 저것 서로 권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산의 힘을 그때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중청의 거센 바람은 매서웠다.
손이 얼 정도로 세차게 불어 대피소 반대쪽으로 바람을 피해도 춥긴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오리고기를 먹고 남은 기름에 김치와 밥을 넣고 볶아서 넷이 먹다 셋이 다 죽어도 모르게 맛있는 아이리스님표 볶음밥을 감탄하며 먹었다.
소주가 떨어져서 한 팩 더 넣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옆테이블 사람에게 한잔 더 얻어 마시고 정리 후에 대피소 침상으로 들어왔다.
간단히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고 정리를 하고 내일 산행 준비를 위해 채비를 했다.
중간 중간 잠을 이루지 못해 나간 밖은 내가 지금까지 본 밤하늘의 별보다 훨씬 더 많은 별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서 빛나고 있었고
저 멀리 동해바다 항구의 불빛도 보여 내 눈을 휘둥그래하게 했지만 너무 추운 바람에 더 있기를 포기하고 자리로 들어와 잘 준비를 했다.
난 동행자들에게 멜라토닌 하나씩을 나눠드리고 나도 하나 먹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그 좁은 공간에 120명이 있다 보니 자리는 비좁고 공기는 덥고 조금은 소란스럽고
산행 후 씻지 못한 찌뿌둥함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며 어제에 이어 또 한잠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까지 한잠도 못 잔줄 알았지만 바람아님께서 잠자리 들고 두 시간쯤 잤다고 하셔서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내 기분은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기억이었다.
잠을 못 잔 안 좋은 컨디션이었기에 내일 일정이 걱정이 됐다.
더 이상 뒤척여봐도 잠이 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차라리 빨리 새벽이 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더딘 시간이 지나 새벽 5시가 되자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배낭은 자리에 둔 채 옷을 최대한 껴입고 대청봉에 오르기 위해 나섰다.
깜깜한 암흑 속 랜턴에 의지해 한발씩 대청봉을 향하는데 바람이 매섭게 추웠다.
바람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긴 처음이었다.
칼바람을 뚫고 대청봉에 올라 아직 동이 트기 전 흐릿함 속에 정상 인증샷을 찍고
일출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데 날씨가 하늘은 맑게 개었지만 동해 바다쪽이 해무가 끼어
일출을 보기는 무리라 판단하고 다시 중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새벽에 산을 타기 시작했던 저녁놀님 부부가 대피소에 도착해서 우린 반가이 맞이하고
저녁놀님 부부는 간단한 요기를 하고 우리는 짐을 꾸렸다.
각자 요기와 짐 정리가 다 된 후 이제 6명이 한 팀이 되어 2일차 일정을 향해 걸어갔다.
대단한 부부.
밤에 운전하고 와서 곧바로 그 깜깜하고 추운 산길을 걸어 여기까지 금새 도착하다니.
그리고 또 험난한 공룡능선 길을 가다니 엄청난 부부였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린 다같이 모여 단체샷을 한장 찍고 소청봉을 향해 걸었다.
어제 온 길과는 다르게 계단이 많고 깊은 내리막 길이었다.
그러나 상쾌한 아침공기와 햇볕이 어제의 찌뿌둥함을 날려주고 이런 저런 아침 설악산의 장관을 즐기며 계속해서 희운각대피소를 향해 나아갔다.
어제 그렇게 올라온 만큼의 높이를 아깝게 한번에 다 내려 가려는 듯 계속해서 깊숙히 내려가고 있었다.
내려갈수록 포근하고 조용한 느낌에 빠져들었다.
저 위는 한겨울 매서운 겨울 같은 느낌인데 이곳은 사뭇 달랐다.
드디어 도착한 희운각은 마치 인디안썸머의 가을날 어느 조용한 레스토랑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규모 인원이 북적대는 중청대피소와는 다른 몇몇 사람들이 소소하게 담소를 나누는 커피숖처럼 아담하고
따듯한 햇살아래 저마다 행복을 숫가락에 담아 입에 넣고 있었다.
우리도 한 켠을 둥그렇게 둘러앉아 밥을 짓고 찌게를 끓이고 라면을 끓이고
새벽 내 달려온 몸을 잠시 쉬며 따뜻한 음식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나서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산속 깊은 오두막 커피숖에서 마시는듯한 환상의 그윽함에 빠져 들었다.
나중에 다시 설악산에 오면 다음 코스에는 반드시 희운각 대피소에서 1박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잠시의 동화 같은 휴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메인 이벤트 공룡능선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에 장비를 단단히 채비하고 나아갔다.
서서히 보이는 공룡능선의 웅장하며 위협적인 모습들 이 광경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그 현장에서만 보고 느낄 수 있는 그 무언가!
앞으로 나아갈수록 우리 뒷 편으로는 어제 서북능선 쪽에서 대청쪽을 보며 걸었던 반대쪽 설악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룡능선을 걸으면 걸을수록 느껴지는 다양한 산행의 즐거움.
원래 편안한 산길 코스도 좋지만
그보단 밧줄코스 무너미코스 등 다채롭게 온몸을 움직여 나아가는 코스를 좋아하는 나로선 정말 즐거운 산행코스다.
안내도에 검게 그려진 난이도 최고의 코스지만
나에겐 앞으로 가면 갈수록 이 코스가 줄어드는 것이 아까운 그런 기분이다.
난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이곳을 한곳 한곳 눈에 새기고
지금 내가 이곳에 서 있음을 간직하려 집중했다.
저 멀리 우리가 목표로 한 나한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앞으로 늘어선 갖은 모양의 공룡능선.
그 속에 우리가 나아갈 길이 어디 숨어 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가면서 내 눈에는 지금껏 어느 산에서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바위들이나
뾰족한 바위 울타리들 겹겹이 달려드는 기암괴석들로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난 분명 설악산의 한가운데에 있음이 분명했다.
그렇게 남아있는 즐거운 길이 점점 줄어들어 어느덧 나한봉을 지나 마등령에 도착하였고
지나온 공룡능선을 뒤돌아보니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공룡능선의 바위들이 또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비선대를 향해 가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편안한 숲 속 길이어서 조금은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오는 동안은 몰랐는데 단조로운 길을 걷다 보니 지금까지 무릎과 발목에 누적된 피로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계령에서 보아온 울산바위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우리가 걸어온 산이 뒤쪽으로 작아지며
한눈에 들어올 정도가 되자 황금색 설악산의 암벽들이 더욱 밝게 빛나는 장관이 펼쳐졌다.
계속해서 변하는 설악산의 모습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불가능했다.
금강문을 지나고 금강굴 표지판이 나와서 갈등이 일었다.
햇빛을 받아 위쪽에 보이는 금강굴이 있는 암벽이 시야에 들어오자 이번 코스에 빼놓은 저곳을 나중에
꼭 다시 와서 보리라 마음먹고 발걸음은 계곡쪽을 향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끝없는 하산길 그리고 통증을 더해가는 높은 돌계단들의 향연.
얼마를 더 내려가야 하는 것일까 비선대를 지나자 겨우 평지가 나왔지만 평지라고 다리가 편하질 않았다.
그동안 누적된 엄청난 통증들이 무릎을 아프게 했도 발목은 한발 내 딛을 때마다 저려왔다.
이정표에 나와있는 소공원까지의 키로수가 몸을 더욱 힘들게 하였다.
그러던 중 만난 웅장한 바위들로 채워진 맑은 물이 강처럼 흘러가는 비선대 계곡은 잠시 그런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아름다운 곡선들로 이루어진 장관의 계곡.
그래서 옛사람들도 저렇게 설악산을 즐기고도 모자라 왔다갔음을 멋진 글씨들로 바위들에 남겨두고 갔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람 없는 조용한 설악산 산행이 이쯤 오자 엄청난 인파의 관광객들로 붐비고 북적거렸다.
신흥사에 잠시 들러 통일대불을 한참 바라보다 다시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걸었다.
발목의 통증이 심각했다.
그래도 지체할 수 없기에 아픈 발을 이끌고 겨우 주차장에 도착해서 짐을 싣고
우린 바람아님이 말씀하신 온천을 찾아 이틀 동안 몸에 밴 땀과 소금기를 깨끗이 씻고
다시금 살아난 컨디션으로 대전을 향해 달렸다.
잠시 설악산권을 벗어난 곳에서 저녁으로 황태찜을 푸짐히 먹었다.
반주겸 동동주를 시켰는데 난 운전을 해야 해서 먹지 못함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든든히 저녁을 먹고 다시 집으로 출발을 하고.
오는 내내 차 안에서는 설악산 얘기들로 이야기가 끊이질 안았고 피곤함에 어서 빨리 집에 가야겠단 생각에 속도를 좀 내어 달렸다.
운전을 하면서 내내 지금까지 지나온 이정표와 머릿속의 설악산 코스들이 이리저리 짜맞추어져서 다시 하나의 코스가 완성되고 있었다.
다음번 설악산 코스였다.
백담사에서 출발해서 영시암을 거쳐 오세암을 지나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을 이번 코스와 반대로 타고
희운각에서 동화속 레스토랑 1박을 하고
천당폭포를 지나 양폭을 거쳐 귀면암을 보고 비선대를 통해 소공원으로 나오는 코스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릿속에 코스를 저장하고
계속 차를 달려 드디어 집에 도착을 하며 길었던 1박2일의 설악산 종주를 같이 한 멤버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끝으로 집에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고 피곤한 몸이지만 머릿속은 온통 설악산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어서 오늘도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하리라.
눈만 감으며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설악산의 모습들.
이제는 말할수 있으리라!
나도 설악산을 다녀왔다고!
설악산을 다녀온 사람 줄에 설수 있다고!
그리고
이젠 어딜 가지?
…
한라산이 남았구나!
그래 한라산 가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
그렇게 준비랄것도 없이 머릿속으로 한라산을 그리고 있을 때 카페에 한라산 산행 일정이 떳고
주저없이 난 한라산 대열에 참가신청을 했다.
기다려 한라산!